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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전쟁》, 자본과 윤리 사이에 선 사람들

by Lucian Yool 2025. 7. 9.

영화 "소주전쟁" 포스터
영화 "소주전쟁"

 

🎬 제목: 《소주전쟁》(Soju War)
📅 개봉: 2025년 예정
🎥 감독: 신연식
🎭 출연: 유해진, 이제훈, 이선균, 조현철, 정소리 외
🏷️ 장르: 드라마, 기업 실화극

 

 예고편 영상 1

 
 
 

 예고편 영상 2

 
 

 

 

 IMF 시기, 그 풍경을 되살리다

 

1997년의 한국, 국가 부도의 공포가 실체로 다가왔던 그 시절을 《소주전쟁》은 다시 꺼내 놓습니다. 영화는 이 시기를 단순한 시대적 배경이 아닌, 서사의 동력으로 삼습니다. 강원도 원주에서 벌어지는 지역 소주 회사 간의 점유율 경쟁은 국가 경제 위기의 단면처럼 그려지죠. 무너지는 중소기업, 구조조정 압력,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방 회사의 고통이 정제된 감정으로 화면 위에 녹아듭니다.

공장 내부의 습한 공기, 타이핑 소리 없는 사무실의 적막, 뉴스 속 IMF 협상 보도는 90년대 말 특유의 불안감을 생생히 복원합니다. 특히 영화 속 소주 브랜드 간 합병과 인수 시도는 단순한 상상이라기보다, 실제 벌어졌던 시장 재편의 흔적을 연상케 합니다. 이처럼 시대성은 단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물의 선택과 사건의 흐름에 구조적 무게를 부여합니다. 1997년은 이 영화에서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인물처럼 기능합니다.

 
 

 긴장과 모순을 품은 4인의 인물들

 

《소주전쟁》은 개인의 욕망과 윤리가 충돌하는 인물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유해진이 연기한 강동식은 공장 출신 기술자 출신 이사로, 현실의 벽 앞에서 점점 냉정한 전략가로 변모해갑니다. 그는 사람 냄새 나는 인물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도덕과 타협하는 갈등의 지점에 서 있습니다.

이제훈의 장윤호는 대기업의 논리로 움직이는 마케팅 전략가입니다. 말끔한 외형과 달리, 철저히 숫자와 효율로 판단하는 인물로, 지역 감성이나 노동자 감정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의 등장은 지방 기업에 닥친 외부 압박의 얼굴이기도 하죠.

이선균이 맡은 정태수는 퇴직 후 복귀를 꿈꾸는 전직 간부로, 회사를 위해 바쳤던 과거와 쓸모없는 존재로 밀려난 현재 사이에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의 대사는 종종 회한과 분노를 동시에 품습니다.

정소리의 김지혜는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실무자로, 회계나 경영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위기를 마주합니다. 그녀의 분노는 연극적 과장이 아닌 현실의 절박함을 닮아 있으며, 영화 속 가장 날것의 감정을 품은 인물입니다.

 
 

 기억에 남는 대사, 묵직했던 순간들

 

이 영화는 사건보다 한 줄의 말이 더 오래 남습니다. 강동식의 “우린 지금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중이야”라는 대사는 단순한 생존이 아닌, 인간 존엄에 대한 통렬한 선언처럼 다가옵니다.

정태수가 내뱉는 “이젠 꿈도 조직에서 정리해주더라”는 말은 구조조정 시대의 냉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들이밀며, 동시대 중년들의 허탈함을 상징합니다. 김지혜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는 “사람이 먼저냐, 숫자가 먼저냐고요!”는 그 어떤 수치보다도 강한 울림으로 남습니다.

대사들은 단지 인물의 입을 빌린 표현이 아니라, 그 시대를 통과한 사람들의 증언처럼 기능합니다. 유해진 특유의 숨 쉬는 말투와 이선균의 절제된 연기 톤이 각 문장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영화 전체를 감정적으로 단단히 붙잡아 줍니다.

 
 

 자본의 논리와 충돌한 윤리의 얼굴들

 

영화는 ‘소주’라는 현실적 소재를 통해, 한국 사회가 외환위기 속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되묻습니다. 소주 브랜드 통합, 성과 중심 구조조정, 가격 경쟁, CSR 마케팅, 신뢰 붕괴까지. 이 다섯 가지 자본 논리는 단지 기업 전략이 아닌, 수많은 사람의 삶을 좌우했던 현실이었습니다.

지역성과 효율의 충돌, 인간성과 숫자의 대립, 공생과 착취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선택의 연속. 《소주전쟁》은 이 구조적 갈등을 단순화하지 않고, 세밀하게 분해합니다. 그리고 관객에게 묻습니다. '그 시대에 당신이 있었다면, 과연 어떤 쪽에 섰을 것인가?'

 
 

 맺으며

 

《소주전쟁》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1997년의 공기, 그리고 그 안에서 흔들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듭니다. 소주병 너머의 냉혹한 경제 논리, 웃고 있지만 무너지는 사람들의 초상. 이 영화는 우리에게 다시 질문합니다. '시스템은 남았고,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질문이 여전히 유효한 시대에, 이 영화는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닌,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